1963년 11월 Science지에 Mathews의 글 “The Digital Computer as a Musical Instrument”가 실렸다.
“일반 악기와 달리 컴퓨터를 음향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이론적인 제약은 없다. 현재의 컴퓨터음악은 비용과 음향심리에 대한 부족한 지식으로 인한 한계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컴퓨터음악은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아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진지한 작곡가들에 의해 사용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목적은 그러한 음악가들이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 즈음 Jean-Claude Risset은 파리의 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물리학 전공 대학원 과정에 있었다. 그의 지도교수인 Pierre Grivet은 Science지에 실린 Mathews의 글을 읽고 Risset에게 전해 주었다. 내심에 작곡에 관심이 많았던 Risset은 그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음악과 관계없는 다른 과학들은 모두 관두기로 결정했습니다.” Grivet의 도움과 Pierce의 지원 아래 Risset은 Bell Labs에서 박사 논문을 진행할 수 있도록 프랑스 연구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1964년에 Risset은 James Tenney의 뒤를 이어 Bell Labs의 상주 작곡가가 되었다.
“거기 도착하고선 굉장히 놀랐어요. 그 분위기가 대단했거든요. 수학, 컴퓨터 과학, 심리학, 음향학, 통신, 생물학 등의 분야에 굉장한 연구가들이 함께 섞여서 일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연구실도 함께 쓰고 있었죠. 자존심 강하고 구분이 분명한 유럽에 비해 상당히 열려 있는 분위기 였습니다. 프랑스에선 어느 한 곳에만 속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통합이 불가능했어요. 이런 이유때문에 전자음악은 프랑스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만들어 졌어요. 그리고 그 곳은 즉각적인 결과물에 대한 부담도 적었지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용한 것은 뭐든지 연구가 가능했거든요.”
상주작곡가로서 그가 처음에 결정해야 할 것은 작업 방향이었다. “Max는 컴퓨터 작곡에 대한 몇 가지 연구 방향을 제시했어요. 하지만 전 음색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트럼펫의 음색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컴퓨터음악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표현성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죠. 특정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는 아무도 몰랐거든요…”
"트럼펫 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을 주파수분석기와 컴퓨터로 분석을 했습니다... 트럼펫에서 얻어진 소리는 구체적으로 굉장히 복잡했고 녹음된 소리마다 달랐어요. 그래서 청각에 중요한 특징들만을 가려내서 정보의 양을 줄여야 했지요. 소리합성을 통해 다양한 청각 특성들을 살펴 보고 금관악기 음색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리의 크기에 따라 스펙트럼이 변한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즉, 음량이 커지면 고주파 성분의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것이죠."
Bell Labs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Risset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아침 10시쯤 도착해서 저녁 6-7 쯤까지 있었어요. 물론 더 늦은 시각까지 남아 있을 때도 있었죠.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아주 즐거운 시기였죠. 때때로 Max와 문제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 그가 해결을 해주곤 했죠. John Pierce는 정기적으로 찾아왔어요. 그는 Bell Labs의 큰 부서의 담당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연구자들을 일일이 만나서는 진행중인 작업 이야기를 듣고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어요."
1965년 Risset은 병역을 마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해 IBM은 새로운 Series 360 컴퓨터를 내 놓았다. 집적회로로 만들어진 이 컴퓨터로 인해 호환성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방식이 쓰이게 되었다. 1965년 이전에 만들어진 Music-N 프로그램들은 로레벨의 기계에 특화된 어셈블리 언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1965년 이후로 컴퓨터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컴퓨터가 등장하고 기술의 발전 속도 역시 빨라졌다. 즉, Music-N 프로그램도 호환성을 가진 하이레벨 언어로 쓰여진다면 그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었다. FORTRAN은 1960년대 중반에 가장 많이 사용되던 하이레벨 언어 중에 하나로 대부분의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1967년에 Princeton 대학의 Hubert Howe와 Godfrey Winham은 Music IV-BF라는 Music IV-B의 FORTRAN 버전을 완성했다.
1967년에는 Richard Moore가 Bell Labs에 들어 왔고, Jean-Claude Risset도 프랑스에서 돌아왔으며 Vladimir Ussachevsky가 방문 작곡가로 있었다. 그리고 Mathews, Moore, Risset, Joan Miller가 Music V 제작에 참여하여 1968년에 이를 끝냈다. Music V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모듈 시스템으로 -파형 생성기인 OSC, 입력 가산기 AD2, 랜덤 수 생성기 RAN 등으로 되어 있는-여러 가지 모듈을 조합하여 악기를 만들 수 있었다. 즉, 유닛 생성기(unit generator)의 수와 조합 방법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구조를 가진 악기들의 제작이 가능했다. 그리고 각 악기마다 따로 음을 만들어 내었는데 음들은 각각 구별되는 악기 정의(악기의 유닛 생성기에 대한 명령어), 시작 시간,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모든 정보들을 포함한 음의 리스트는 악보(score)라고 불렸다. Music V는 Music-N 계열 프로그램의 결정판으로 비슷한 종류의 많은 프로그램들의 개발에 지표가 되었다. 그리고 FORTRAN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다른 컴퓨터로 쉽게 이식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쉽게"라는 말은 1960년대의 기술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당시의 컴퓨터 프로그램은 천공카드(punched card)를 이용하여 배포되었다. 이에 대해 Moore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Music V 프로그램을 보낼려면 약 3500장의 천공카드를 꽉 채운 상자 2개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편지에 이렇게 덧붙였죠. ‘행운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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