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리우스 카듀(Cornelius Cardew, 1936-1981)는 영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20세기를 뒤흔들었던 다양한 실험 음악의 흐름을 경험한 후 정치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카듀는 1953-57년까지 런던의 Royal Academy of Music에서 피아노, 첼로, 작곡 등을 공부하였다. 1957년에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영국 공연에 연주자로 참여하였고, 1958-60년에는 쾰른에서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조수로 일했다. 이 시기에 카듀는 쇤베르그(Schoenberg) 스타일의 음렬주의 작곡법을 버리고 존 케이지(John Cage), 데이빗 튜도어(David Tudor) 등의 미국 출신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1960년대에는 모튼 펠트만(Morton Feldman),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얼 브라운(Earle Brown), 크리스찬 볼프(Christian Wolff) 등의 미국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을 영국의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연주자, 작곡가로서 실험 음악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고, 1968년에는 실험음악 앙상블인 Scratch Ensemble을 조직한다.
하지만 1970년대가 되면서 카듀는 아방가르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사회 운동에 깊게 관여하는 정치적인 작곡가가 된다. 카듀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이론에 심취하여 난해한 실험음악이 아닌 대중적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음악들로 혁명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자신의 음악적 태도에 대한 자기 반성, 자아 성찰의 의미로 <Stockhausen Serves Imperialism>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보인 카듀의 태도는 20세기 서구의 아방가르드 음악이 가진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이기도 하였다. 카듀는 People's Liberation Music이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고, 영국의 공산당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다. 1981년 겨울 카듀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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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있는 글이네...
형도 음악 작업 해야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