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G 아트홀 계간지인 <Interview>에 기고한 글입니다.-----------------------------------------------------------------
제품을 위한 사운드 디자인
-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의 소리와 그 기능에 대하여
음악은 오랫동안 예술의 영역에 머물면서 가장 추상적인 정보를 표현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이 글에서는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제품디자인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능을 중심으로 본 소리의 역사”, “제품을 위한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풀어보고자 한다.
- “기능”을 중심으로 본 소리의 역사

음악사로 대표되는 소리의 역사에서 소리의 기능과 유용성에 대한 생각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중요한 매체였으며 언제나 우리에게 환경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시선에 따라 정보 전달의 범위가 제한되는 시각과 달리 청각은 항상 외부에 열려 있으며, 머레이 쉐퍼(Murray R. Shafer)가 말했듯이 잠들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정보를 전달해 주는 매체가 소리이다. 소리라는 재료로 구성되는 음악 또한 그 시작은 미적 경험보다 기능에 따른 것이었다. 고대의 축제에서는 감정의 고양을 위해 음악이 만들어졌고, 수학, 천문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으며 중세에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음악이 귀족 사회의 여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소리는 순수하게 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예술 세계에 머물게 되었다.
음악(소리)을 듣는 방식, 그리고 그 기능과 유용성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된 것은 미래주의, 다다이즘과 같은 20세기 현대 예술의 등장과 함께 한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에릭 사티(Erik Satie)는 감상을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 아닌 갤러리의 그림이나 의자처럼 존재하는 “가구 음악(musique d’ameublement)”을 만들었다. 사티는 음악을 중심에서 배경으로 옮겨놓음으로써 현실 세계와 분리되어 순수한 추상의 세계에 있던 음악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Muzak이 상점을 대상으로 배경 음악 서비스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미적 가치가 아닌 기능성으로 음악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중요한 변화였다. Muzak은 배경 음악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공장으로도 서비스를 확대하였고 2차 세계 대전에 따른 공산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함께 Muzak은 전성기를 누린다. Muzak이 배경 음악 서비스를 위해 사용한 음악들은 주업무를 방해하지 않도록 빠르기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여 편곡한 것들인데,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이후 “뮤자크(Muzak)” 혹은 “엘리베이터 음악(elevator music)”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 제품디자인과 소리

소리는 제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혹은, 소리는 제품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제품 디자인에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사운드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제품의 판매, 사용에 미치는 소리의 역할이 이미지에 비해 미미하다는 판단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제품 디자인에서 소리는 다음의 2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리의 중요한 기능 중 첫번째는 상황에 대한 알림 기능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의 벨소리는 누군가 당신을 찾고 있음을 알려주며,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배터리 충전이 필요할 때 등 휴대폰의 동작에 대한 피드백의 상당 부분을 소리가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세탁기, 에어콘, 커피포트, 전기밥솥 등 대부분의 가전기기들도 소리를 사용하여 동작 상태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소리도 잘못 디자인되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소음이 된다. 실제로 휴대폰에는 기능과 관련되는 수십종의 소리가 들어있지만 대부분은 무음 모드에서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시끄러운 벨소리가 여기저기 흘러 나오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따라서 제품에 적합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심리학, 음향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경험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소리의 또다른 중요한 역할은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사운드 브랜딩(sound branding)이다. 기업이나 제품의 특징을 상징하는 CI(Corporate Identity), 브랜드, 그래픽 로고처럼 사운드 로고도 기업 혹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TV광고에 많이 등장했던 인텔의 사운드 로고, Windows와 Mac 컴퓨터의 시작음, Nokia 휴대폰의 “Nokia tune”등 다수의 회사들이 사운드 브랜딩을 통해 제품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성이나 LG와 같은 국내 기업들은 사운드의 세계에선 그들의 경쟁 상대들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 제품 디자인에서 사운드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가?
제품 디자인에서는 사운드 디자이너는 일반적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다. UI 분야는 인터페이스의 논리적인 구조를 담당하는 LUI(Logical User Interface), 시각적 요소들을 담당하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 하드웨어적인 요소를 담당하는 PUI(Physical User Interface), 그리고 소리를 담당하는 AUI(Auditory User Interface) 등으로 분류된다. 제품디자인에서 AUI의 우선 순위는 낮기 때문에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소리는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사운드 디자인은 사용자의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품디자인에서 사운드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효과음이나 벨소리와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UI 디자이너로서 사운드 디자이너는 콘텐츠의 기획, 생산, 관리 뿐만 아니라 UI와 관련된 이슈들도 다룬다. “어떤 상황에서 소리가 나게 할 것인가?”, “mp3 플레이어의 소리 크기는 몇 단계로 나누는 게 적절한가?”, “어떤 음역대의 소리를 사람들은 편하게 느끼는가?”, “유럽의 사용자들은 어떤 소리를 선호하는가?”, “중동에서는 어떤 음악을 사용하면 안되는가?” 등과 같이 UI의 설계에서부터 사용자의 선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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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공예가, 예술가, 건축가들에 의해 산업디자인이 탄생한 이래 벌써 한 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제품을 위한 사운드 디자인은 여전히 미개척 분야에 가깝다. 최근 디자인 분야에서 중요한 이슈인 사용자 중심 디자인, UX(user experience) 디자인에서도 소리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한편 1970년대 캐나다를 중심으로 시작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디자인, 음향생태학(sound ecology)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음악 중심의 이론 연구나 소리에 대한 공학적 연구와 다르게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소리를 다루었다.
미래주의자들은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기계의 소리들을 훌륭한 음악적 재료로 받아들였고, 존 케이지는 주변의 소음들도 귀를 기울이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신호등 소리,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소리, 자전거 벨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가전 제품들이 동작하는 소리와 같은 일상 속의 소리들은 창작을 위한 좋은 재료이기도 하지만,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나는 이 소리들을 어떻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담아놓을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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