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된 기술, 새로운 재료, 새로운 구성방식을 끊임없이 접함으로써만 창조적인 사람들이 과거의 것과 잘 연결되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로부터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개발할 수 있다. 즉,
- 기계와 운송수단 등의 새로운 생활환경을 의연히 받아들일 것.
- 낭만적인 치장이나 변덕스러움이 아닌, 자체의 법칙을 따르며 그 시대에 의해 결정되는 유기적인 디자인을 할 것.
- 기본적인 형태나 색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음.
- 복잡성 속에서의 단순성, 공간-재료-시간과 경비의 경제적인 사용.
-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표준화된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은 사회적인 필연성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매한가지다. 집이나 가구 그리고 집기 같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은 기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표준화된 것을 만드는 기계는 스팀이나 전기 등 기계적인 방식에 의해 사람들을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훌륭한 수단이며 이를 통해 대량생상된 것들은 손으로 만든 것보다 값도 싸고 품질도 더 좋다. 이러한 표준화가 개인적인 선택권을 유린할 위험은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모델들이 경쟁을 통해 자동적으로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롤프 뢰스거(Rolf Rösger), "바우하우스 공방작업 Bauhaus Werkstattarbeiten" 카탈로그에 실린 '바우하우스 금속 공방의 작업에 대하여', 데사우, 1978
바우하우스. Frank Whitford 저, 이대일 역.
마이어 재임 당시 모든 공예교육의 초점은 '공부'를 위한 상상적인 과제가 아니라 작업 자체에 두어졌다. 그러므로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집이나 상상적인 부지 같은 것은 없었으며 실제 환경 속에서의 실제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현대적인' 것에 열광하는 몇몇 속물을 위한 단 하나의 가구 같은 것은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았으며 그 대신 대중을 위한 표준화된 가구가 만들어졌다...
개인 공방은 점차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연합적인 작업 그룹으로 변화되었다.
오스카르 슐레머(Oskar Schlemmer),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데사우, 1927. 4. 17
바우하우스. Frank Whitford 저, 이대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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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시간이 흘러가야하지? 라는 설명에는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나에게는 연속된 사건의 변화로 보는 물리학의 시각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네...
다음 작업에 밀접한 연결이 되는 중이라서... 그냥 한번 썼음...
형이상학적 논쟁이라 상관없는건가?
문득 "현재"라고 부르는 순간이 존재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